마음 한 켤레 벗어두고 깜빡 조는 샛별처럼

ISBN : 979-11-92134-38-3

저자 : 주종환

페이지 수 : 104p

발행일 : 2023. 3. 13.


책 소개 :

언제부턴가 내 의식의 입구에서 울리기 시작한 화재경보기 소리, 나는 이미 불타는 집에 살고 있다. 지난날의 대물림, 그 권력 구조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내면의 자유로운 공간 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이것을 향해 기억하기, 바로보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의 마지막 에고이즘.

 

번갯불이 번쩍하는 순간, 캄캄한 숲길에 나 있는 길이 언뜻 드러나 보인다.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다 보면, 생각 몇 가닥이 남아서 메아리친다. 나는 그 고백체의 외침 같은 시를

쓰려고 했을까. 이 세상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로부터의 자유라고 배웠다. 그 모든 이의 가슴에 태풍의 눈 속 같은 평화, 중심 그리고 신성이 깃들기를!

 

오래도록 보지 못한 지는 해를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보이지 않는 질서에 의해 진정한 자유의 길이 막혀있는 것 같다.

더 이상 현실비판적인 시가 나오지 않는 이 시대의 시들, 그 아이러니, 그 막막한 현실, 나 또한 거기에 길들여져 온 것 같다. 내가 이 시집에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시적 창작의

추구점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순수한 내면을 향한 의식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법적으로 ‘자연법’이 허용되어 있지 않은 이 지상에서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명상공동체의 정원을 꿈꾸어 본다.

우리 모두 그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를 소망해본다.


출판사 서평 : 

정신적 삶의 향유, 주종환 시인. 그의 여섯 번째 시집 <마음 한 켤레 벗어두고 깜빡 조는 샛별처럼>. 시인의 작품을 마주하는 동안 큰 심호흡이 필요했다. 시인의 깊이를 이해하기 위해, 시인의 표현에 동화되기 위해. 인간의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토록 깊은 사유가 혹시 사치라 여겨지는 시대가 되진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이 세상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로부터의 자유’라고 나지막하지만 큰 울림을 전하는 시인 주종환. 그의 자유를 느낄 수 있다면, 당신도 이미 시인인지 모른다.


저자 소개 : 

주종환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1992년 『문학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어느 도시 거주자의 몰락』문학동네,

『일개의 인간』 천년의 시작,

『신비주의자』 천년의 시작,

『끝이 없는 길』 서정시학,

『계곡의 발견』 지혜 등이 있다.

 

시인은 말한다.

“우리는 모두 하늘과 땅 사이 존재할 수

있는 그 모든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상처를 핥아먹고 사는 삶이었다.”

시인은 ‘텅 빈 우체통 같은 우리네 영혼의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시를 쓰고자 한다.


책 속 내용 :

낮에 나온 낮달 (p.16)

 

낮에 나온 낮달처럼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은 시

 

새벽녘까지 홀로 깨어

처음으로 혼자 마신 술의 기억

 

그 술맛과 앞날의 예감 사이에

내 안의 태양은 지고

서늘한 달이 떠올라

시가 되지 못한 한 생애를 비추었네

 

내 한쪽 가슴의 여성이

처음으로 취한 밤

 

그 달이 지는 곳을 처음 느꼈네

모든 별들의 낭떠러지 같은

그 영혼의 첫걸음을.

 

 

 

유성과의 마주침 (p.44)

 

우주는 끝이 없는데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있다니

우주에서 가장 깊은 메아리가

바로 인간.

 

한밤중 무심결에

갑자기 유성이 지나갈 거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옥상 문을 여니

밤하늘에 유성 하나가 휙 하고 스쳐 지나갔다

 

존재계와의 일별이었다

 

 

 

수족관 (p.65)

 

바깥에는 겨울비가 내리는데

횟집 수족관 속은 고요하여라

한창 교미에 열중인 게 한 쌍

그곳이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심연인 듯

아무런 근심 없이 살아있네

단 한 번도 수족관 밖을 보지 않은

눈을 가지고

계절도 없는 자신만의 우주를 살아가네

바다가 먼 바닷속같이.

 

 

 

나무 (p.75)

 

흐린 날이 계속되자

나무는 성장을 멈추고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나무는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닌

잠결에 빠져들었다

나무는 잠결에 자신을 길러온

빛을 향한 염원을 되살렸다

어느 날 새가 날아와서

가지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나무껍질 속의 벌레들을 잡아먹고

천상을 향한 날갯짓 소리를 내며 놀기 시작하자

나무는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다시금 흙을 움켜쥔 뿌리로 숨을 쉬기 시작했고

가느다란 수액이 나무꼭대기로 흐르기 시작했다

꼭대기에 몇 개의 잎이 자랐고

나무와 새는 한 몸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