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시 동안 추억은 완벽했습니다

ISBN : 979-11-92134-28-4

저자 : 장윤정, 조윤희, 이영, 최료, 조성권

페이지 수 : 224

발행일 : 2022. 11. 7.


책 소개 :

추억은 솔직한 날개를 달아줍니다.

무장해제 되고. 잠겨 몽글해지는.

저마다의 의미는 풍성하겠습니다.

 

잠시만 모셔다드릴까요,

당신이 될 수도 있고

당신의 사랑이 될 수도 있으며

구름의 여정이 될 수도 있는 곳으로.

 

떠나가는 계절과 찰나의 반복

여전히 복작복작 잘 지낼 겁니다.

눈부신 그때를 기억해주세요.

우리, 또 봐요.


출판사 서평 : 

‘시인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의 추억을 남기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말로, 그리고 글로. 그때의 기억을 가장 아름답게 떠올릴 방법은 바로 글로 남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 일기장에 내 마음을 고스란히 꾹꾹 적어 남기듯 여러분의 삶을 시(詩)로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고 글을 쓰는 다섯 시인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인의 언어는 우리 삶을 표현합니다. 때론 경이롭게, 때론 쓰디쓰게 말이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언어, 시. 장윤정, 조윤희, 이영, 최료, 그리고 조성권 시인이 남긴 세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자 소개 : 

장윤정

 

어깨 위로 쓰러지는 이를 받아내고

유독 어떤 모양새들이 눈에 밟히고

당연하다는 순간에 의문을 가질 때

어김없이 펜을 잡으며 다짐합니다

따뜻한 것들을 쓰겠다고 메말라가지 않겠다고

양분이 되어 고운 흙을 내어줄 것을요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시대를 잇는 시인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과거와 자연, 사람과 사랑

긴밀하게 연결된

그 아름다움을 노래할까요

 

 

 

 

조윤희

 

글을 쓸 때면,

올봄 벚꽃 정도에 흔들리던 설렘이

기척을 내며 불어옵니다.

 

전 글이 좋습니다.

바빠서 어쩌다 쥐어진 낱말들을

훌훌 털어버리더라도 아쉬움이 없습니다.

 

글을 쓰는 길고 가는 그림자에는 떠날 관계가 없기에

저는 그것 하나에만 집중하여

짜증도 내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 모든 감정에 이유가 없기에

까닭 모를 감정에 이끌려

그저 그런 저를 열심히 적어봅니다.

 

펼친 인생에 잠시 꽂은 책갈피,

그렇게 숨어든 인생은 글이었습니다.

 

 

 

 

이영

 

빛나는 순간은 모두가 축복할 테니까

쉽게 외면해버리는 아픔을 나누고 싶어요.

이 긴 터널의 끝에 빛이 비추길.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걸어가길.

주저앉고 싶을 때 잠시 쉬었다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길.

가장 소중한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최료

 

사랑이 진한 자국을 남길수록

우스운 마음은 불안해지는데

제 손으로 줄 수 없는 확신은

어떤 이별로도 환영받지 못하네

비열한 도로 위 우스꽝스러운 걸음들

그 빈틈 사이 가까스로 살아난 사랑 한 조각

서툴지 말아야지 했던 순간

너무 꽉 쥐어버린 손과 어설픈 마음

터져버리기 일보 직전 기껏 놓았던 시간에

담겨있는 어색한 장면만 쓰다듬고 있었네

괜히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기다려달라는 뻔한 소리에 또 쓸릴 피부

가질 수 없는 영구적 사랑의 끝을

순간에 담으려 노력했으나 결국 꾼 악몽

어쩔 수 없이 찰나에 안주하며

모든 끝을 향유할 수는 없는 걸까

 

 

 

 

조성권

 

일상에 작은 공백을 위한

한편은 짧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담고

다양한 이야기로 기억에

남았길 바라면서

쓰고 있습니다

 


책 속 내용 : 

인간 낚시 _ 장윤정

 

아빠 손엔 사용하기 싫은 가위가 있었습니다

그 손 누군가는 미치도록 미웠겠지만요

탓해야 하는 건 그 시대뿐이라는 걸 아나요

하루가 멀다 하고 쌀자루를 옮겼다네요

어제는 저 집 오늘은 이 집

그 무게 가장의 눈물보다 무겁진 않겠지만

우리 먹을 쌀을 거의 내줄 만큼

모두가 힘든 시절이 있었답니다

 

별안간 아버지 웃통 까고 물에 뛰어들었고

옆구리에 나만 한 어린 인간을 끼고 나왔지요

평화롭고 맑던 계곡

빨려드는 유속 밑을 모르던 곳

아이와 아빠의 안경 둘의 운명이 바뀌던 날

둔한 엄마도 내가 빠질 때면 예리해졌지요

꼬르륵 소리가 났다나요

 

아빠는 남을 낚고 엄마는 나를 낚고

나는 이제 당신을 낚아야 할까요

 

 

 

 

배가 고픕니다 _ 조윤희

 

어릴 적 웃음에 배불러

익숙한 그 맛이 지겨웠습니다

 

날카로운 말투에 맛이 들어

당신의 사랑을 편식했습니다

 

이제 어느덧 나이가 차니

배가 고픕니다

 

내 배를 어루만지던

따뜻했던 손길이 그립습니다

 

부스스 눈 뜬 아침에

모락모락 뜸 들이던

담백한 인사가 그립습니다

 

너무 늦은 안부에 미안합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동물원 _ 이영

 

동물원에 가기로 약속했었어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

넌 아직 오지 않았지

얼마가 지났을까

저 멀리서 뛰는 네가 보인다

가쁜 숨을 고르는 너의 양손 가득

도시락이 들려있어

 

천천히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잖아

벤치에 앉아

네가 만들어온 도시락을 먹었어

그땐 너의 마음과

진심을 다 알지 못했는데

지나고 나서야 그게 보였어

나에게 도시락이 아닌

모든 걸 해주고 싶었던 너라는 걸

 

 

 

 

복숭아 _ 최료

 

복숭아를 삼킨 나는 누구지

나는 복숭아가 됐어

저녁을 굶었더니

살아남은 나는

복숭아가 됐어

내 엉덩이는 내 얼굴이고

내 털은 복슬복슬해 아직도

피부는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본 것같이

발그레 보이는 게

귀여우면 좋겠다

아니 귀여워하지 마

난 고작 복숭아니깐

너도 나를 삼켜

나와 같은 복숭아가 돼볼래

 

 

 

 

들꽃 _ 조성권

 

저마다 노력 끝에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마치 화엄의 세계에

있는 듯이 조화롭다

 

어떤 꽃은 붉어서

어떤 꽃은 파래서

어떤 꽃은 노르스름해서

어떤 꽃들은 크거나 작아서

 

그것만으로 이유가 충분히다

 

아무리 누군들

무엇하냐고 말하지만

그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