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입술들

ISBN : 979-11-92134-34-5

저자 : 진주현

페이지 수 : 280p

발행일 : 2023. 1. 26.


책 소개 :

한 대학의 정신 의학과에서 근무하는 의사인 나는 하루에도 몇십 명의 환자들을 만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약을 처방하며 바쁘게 지내지만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환자가 찾아온다. 자발성 함구증을 지닌 그녀는 방어적인 태도로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세 번의 만남 이후로는 만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대학 병원을 그만두고 새로운 곳에서 심리 상담소 겸 거처를 마련하고 새로운 환자를 맞으며 지낸다. 그러던 중 우연하게도 다시 자발성 함구증을 가진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가지 일들이 꿈과 현실로 어지럽게 엮어진다. 이 소설은 말이 주는 지독한 상처와 어쩔 수 없는 침묵 속에 갇힌 자들의 그 사이, 의 심정들을 어렵게 전한다.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고 표명했어도 아픈 것들, 침묵을 수행해도 나아지지 않는 것들, 그리고 작은 정직과 온기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도 성찰해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말에 또는 침묵에 상처받은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같이 버티자고 침묵으로 말하는 마음을 담았다.


출판사 서평 : 

무거운 들숨, 그리고 더 깊은 날숨이 섞인 날의 기록을 그 어느 즈음에서 전한다는 진주현 작가. 진주현 작가의 네 번째 소설 <고립된 입술들>. 그간 진주현 작가가 독자에게 전한 메시지는 다소 어둡지만 명확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이번 소설에서도 작가는 끝끝내 침묵을 택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정신의학 소설을 발표함으로써 다양한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침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우리 사회가, 인간이 가진 고난과 그 극복의 이야기를 담았다.

‘말의 우주가 있다면 침묵의 우주도 있다. 침묵에도 냄새와 결이 있다.’ _ 작가 진주현.


저자 소개 : 

진주현

 

무거운 들숨과 더 어려웠던 날숨이 섞인 날들의

기록을 그 중간 어딘가에서 전합니다.

 

전작으로 『커피먹는 염소』,『겨울의 심장』,『천재들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instagram. @sponge _pen


책 속 내용 :

타인의 고통이 나를 먹여 살린다. 그 고통에 줄줄이 엮여있는 상실, 강박, 상처, 우울, 트라우마. 공황, 현기증, 수면 장애, 식욕 부진, 폭식, 이명. 다 늘어놓자면 끝도 없다. 그중에 하나도 소유하지 않은 자들은 아마 이 세상에 없겠지만 그 모든 것의 절반 이상을 깊은 농도로 가지고 있는 타인들이 나를 찾아온다. 마음껏 자신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관음하라고 발가벗겨지길 자청하기까지 얼마나 지치고 어려웠을까. 그래도 그들이 내게 왔다. 그들을 나는 환자, 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달리 부를 이름이 없다. 대부분 우리의 화두는 거의 약에 대한 것이다. 여기는 대학병원이라 내 진료실에 머무는 시간은 기껏해야 5분에서 10분 사이다. 약의 부작용이나 용량에 대해 잠시 의논을 하고 그들은 일어서서 나간다. 그리곤 근처 약국에 갈 것이다. 처방받은 약을 두툼한 약봉지에 받아들고는 두 달이나 석 달의 안도감을 귀하게 여기며 집으로 갈 것이다.

(나의 타인들 중)

 

 

보답받지 못한 희생.

하지만 엄마라면 누구나 저처럼 살지 않을까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아요.

내 말에 그녀는 왈칵 울음을 토해냈다.

저를 이해하세요?

네. 진심으로요.

감사해요. 정말.

그녀는 내 말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가벼운 신경안정제와 항 불안증약을 처방해주었고 그녀는 한 달에 한 번씩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처음에 약은 조금 그녀를 도와줬을 것이다. 그렇게 아주 조금씩 그녀는 나아지고 있었다. 가족과의 관계와는 별개로. 나를 만난 지 5년 가까이가 되어갈 때쯤 그녀가 진료실에서 환하게 웃었다.

(F 329, F 388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