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면 연락해

ISBN : 979-11-89129-16-3

저자 : 백인경

페이지 수 : 103 페이지

발행일 : 2018. 12. 24.


출판사 서평 : 

시인 백인경은 살아있다. 죽은 글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우리 곁에 쉽게 오고 오래 머문다.

시인 백인경은 짐을 짊어지고 간다. 그녀는 수많은 문단 권력에 좌절하는 작가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은 오히려 세련미로 넘친다.

죽어서도 그녀의 이름이, 그녀의 작품이 남기를 바라는 시인 백인경. 그런 그녀의 작품을 만나고 출간하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세상에 ‘나’를 남기고자 하는 그녀를 만나보자. “서울 오면 연락해~”


저자 소개 : 

2012년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상경하여 낮에는 컨텐츠 에디터로, 밤에는 작사가로, 새벽에는 시를 쓰고 있다. 오래 방황했던 이십 대의 마지막 계절에 와서야 어떤 시선에도 얽매이지 않고 세상에 ‘나’를 남길 용기를 얻게 되었다. 고양이와 여행, 혼술을 좋아하고 SNS를 통해 시와 에세이를 비정기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책 속 내용 : 

<트램폴린>

내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애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때 우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넘어졌다

어떻게 끝내는 게 가장 아름다울지

죽어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마지막 자세를 고민했다


번갈아 가며 추락하다가

허공에서 눈이 마주치면 웃었지

한 번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우와, 동시에 탄성을 지른 적은 없었지만


집에 갈 시간이야

중력 속으로 내려왔을 때

서로의 몸에서 반짝이는 정전기를 보며

예쁘다, 동시에 생각했을 거다


너를 생각하는 기분은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다 사라지는

아득하고 선명한 감정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외갓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으면

죽으면서 내 생각이라도 한다면


잊을만하면 네 꿈속에서 죽는 게 내 안부다



<다음엔 바닷가재>

손톱 발톱이 길어질 때마다

내가 내게서 달아나려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또각또각 깎여나간 투명한 괄호들이 나를 가둔다

사실은, 사실은 하면서

진실은 휴지통에 버린 지 오래

손이 빠져나간 두꺼비집처럼 온 몸이 외로워지면

다시 해수면이 차오른다


허물어지는 것도, 허물을 벗는 것도 익숙하다

어느 쪽이 나인지는 내가 제일 모를 자신이 있다


<우리들은 자란다>

시체라도 닦을까

이월의 마지막 새벽, 마침내 네가 소주와 함께 토해낸 말

너의 휴학은 아무 거리낌 없이 진행되었네 마른 김에 밀가루

떡을 말아 씹던

우리의 텁텁한 목구멍만 쓰라리게 헤져 갔을 뿐


가로등 아래

꼬리 잘린 고양이가 정신없이 핥고 있던 텅 빈 자장면 그릇

너의 부재는, 미안하게도 딱 그 만큼의 무게로 시무룩했지


우리는 포도맛 풍선껌을 나눠 씹으며 쿵쿵 걸었네

불량스럽게 딱! 딱!

오래 전 저녁마다 들었던 손바닥 맞는 소리처럼

다문 입 속에서 터지는 푸른 바람


너는 매일 초저녁, 세차장에서 낡은 범퍼를 닦아내지

언젠가 네가 술 취해 안았다던 살찐 매춘부처럼

얼룩진 자리마다 뜨거운 손바닥이 닿았네

둥글게 엎드린 그녀들이 너에게 내민 지폐는

함부로 구겨져 있었지만


정말 시체나 닦을까 너는 시 써서 돈 버니

우리는 살이 연해서 뺨이 자주 아프다

계절은 언제나 알맞게 우리를 적셔주고 가네


오늘, 네 손에선 낯선 냄새가 많이 난다


새벽이 무심코 떨어트린 유성조각

무럭무럭 자라는 손톱

편의점 위스키와 굵은 소금

굳어버린 풍선껌

세차하러 왔다 그냥 돌아간 범퍼들이 내뱉어놓은 쌍시옷

까드득 까드득 깨물어 삼키며, 우리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