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SBN : 979-11-92134-22-2
저자 : 배성희
페이지 수 : 136p
발행일 : 2022. 8. 25.
책 소개 :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았을 저녁입니다>는 첫 시집 <그들의 반란> 이후 14년 만에 내놓은 배성희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총 104편의 시가 1부와 2부로 나뉘어 가을, 겨울, 봄, 여름의 순으로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있다.
그의 사계는 봄이 아닌 조락의 가을로 시작해서 울창한 초록의 여름으로 끝이 난다.
끝없이 순환되는 계절 사이에서 시인이 건져 올리는 감성의 시어들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이며 아픈 이별의 끝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사랑이다.
먼 우주의 성단으로부터 두 발 딛고 선 땅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 자체로 고유한 시이다.
시인은 애틋한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생생한 이미지의 형상화를 통해 화자와 대상 간의 합일을 꿈꾼다.
‘열심히 낡고 최선을 다해 허물어진 것들’이 누리는 고요한 평온이 그가 노래하는 시이자 기도인 것이다.
출판사 서평 :
14년 만의 두 번째 시집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았을 저녁입니다>로 돌아온 배성희 시인. 배성희 시인의 작품을 마주하는 것은 무척이나 설레는 일입니다. 시인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깊이를 기꺼이 헤아릴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시인의 언어를 마음으로 읽고, 시집을 덮고 잠시 여운을 느낄 시간이 필요합니다. 작품에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함께 건네고 있는 듯합니다.
‘안부’를 건네는 그의 작품, 달리는 법을 잊은 관절에는 푸른 이끼가 끼었습니다 라며 세월을 이기지 못한 아름다운 아쉬움 마저 느껴집니다.
어찌 그리 우리네 인생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표현하는지 이 서평으로는 다 담지 못할 듯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당신께 배성희 시인의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았을 저녁입니다>를 선사합니다.
저자 소개 :
시인 배성희
전북 전주 출생.
시집 <그들의 반란>
공저 시집 <그대는 돌아보지 않고 찬란하게 진다>
instagram @musai3535
책 속 내용 :
어떤 기억 (p.48)
너는 꿈이 되어
언제나 내게로 온다
그때의 너는 애틋하고
때론 잔인하며
그리고 자주 아름다웠다
보잘것없는 추억은 뭉게구름처럼 부풀려지고
가려진 시간들은 갈수록 모호해진다
어떤 기억은 서랍 속에 잠들고
아픈 생채기는 화석이 되었구나
너를 그리워했던 나와
나를 애달파했던 네가
한 줄기의 시간 속에서 고요히
풍화되어가는 것을 본다
우리, 사랑이었을까?
잊힐 권리 (p.67)
아침이 서늘한 손으로
혼미한 이마를 짚을 때
나는 무방비였다
은빛 햇살에 눈을 찔린 채 나는
더듬더듬 빛의 감옥으로 걸어들어갔다
정원 말라비틀어진 구절초 위로
서리가 내려앉은 건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며 저녁을 생각하고
가을의 끝에서 겨울을 걱정하는 건
얼마나 나쁜 습관인가
마른 풀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죽어 겨울 틈으로 스며든다
해 질 녘
툭 터져 널브러진 붉은 노을 속에서
나는 차마 죽지 못하고
가을이 겨울에게 잊히던
어떤 순간을 떠올렸다
그렇게 하나쯤은 움켜쥐어도 좋지 않을까,
하얗게 지워질
그런 권리 같은 것
나무의 언어 (p.81)
나무는 혼자서는 말할 수 없어
웅웅대는 속엣말은 저밖에는 못 듣는데
그의 언어는 언제나 나무
바깥에 있기 때문이지
비바람 부는 날이면 겨우 말문이 터져서는
수십 수백 년 붙박이로 선 비밀스런 사연과
이해와 오해 사이의 침묵에 대해서
밤새 지껄이다가
서늘한 빗줄기에 성급히
뿌리까지 젖어 버리는 거지
모두들 바람의 허물을 얘기하지만
바람을 붙드는 건 언제나 나무였어
바람만이 유일한 그의 언어였으므로
제 팔이 꺾이고
부러지는 것도 모르고 나무는
외로워서
뼛속까지 외로워서
애썼다 (p.114)
애썼다,
핏대 올리며 미워하고
가슴 시리게 그리워하고
애끓게 원망하다가
끝내는 사랑하고 마느라
죽이지 않을 만큼만 미워하고
가슴 터지지 않을 만큼만 그리워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사랑하느라
애썼다
그 덕에 아침이 오고
계절 사이마다 비가 내리고
새가 울고
잎새마다 햇살이 타는 것이다
그 덕에
살아있는 것이다
ISBN : 979-11-92134-22-2
저자 : 배성희
페이지 수 : 136p
발행일 : 2022. 8. 25.
책 소개 :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았을 저녁입니다>는 첫 시집 <그들의 반란> 이후 14년 만에 내놓은 배성희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총 104편의 시가 1부와 2부로 나뉘어 가을, 겨울, 봄, 여름의 순으로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있다.
그의 사계는 봄이 아닌 조락의 가을로 시작해서 울창한 초록의 여름으로 끝이 난다.
끝없이 순환되는 계절 사이에서 시인이 건져 올리는 감성의 시어들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이며 아픈 이별의 끝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사랑이다.
먼 우주의 성단으로부터 두 발 딛고 선 땅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 자체로 고유한 시이다.
시인은 애틋한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생생한 이미지의 형상화를 통해 화자와 대상 간의 합일을 꿈꾼다.
‘열심히 낡고 최선을 다해 허물어진 것들’이 누리는 고요한 평온이 그가 노래하는 시이자 기도인 것이다.
출판사 서평 :
14년 만의 두 번째 시집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았을 저녁입니다>로 돌아온 배성희 시인. 배성희 시인의 작품을 마주하는 것은 무척이나 설레는 일입니다. 시인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깊이를 기꺼이 헤아릴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시인의 언어를 마음으로 읽고, 시집을 덮고 잠시 여운을 느낄 시간이 필요합니다. 작품에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함께 건네고 있는 듯합니다.
‘안부’를 건네는 그의 작품, 달리는 법을 잊은 관절에는 푸른 이끼가 끼었습니다 라며 세월을 이기지 못한 아름다운 아쉬움 마저 느껴집니다.
어찌 그리 우리네 인생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표현하는지 이 서평으로는 다 담지 못할 듯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당신께 배성희 시인의 <차라리 비라도 내렸으면 좋았을 저녁입니다>를 선사합니다.
저자 소개 :
시인 배성희
전북 전주 출생.
시집 <그들의 반란>
공저 시집 <그대는 돌아보지 않고 찬란하게 진다>
instagram @musai3535
책 속 내용 :
어떤 기억 (p.48)
너는 꿈이 되어
언제나 내게로 온다
그때의 너는 애틋하고
때론 잔인하며
그리고 자주 아름다웠다
보잘것없는 추억은 뭉게구름처럼 부풀려지고
가려진 시간들은 갈수록 모호해진다
어떤 기억은 서랍 속에 잠들고
아픈 생채기는 화석이 되었구나
너를 그리워했던 나와
나를 애달파했던 네가
한 줄기의 시간 속에서 고요히
풍화되어가는 것을 본다
우리, 사랑이었을까?
잊힐 권리 (p.67)
아침이 서늘한 손으로
혼미한 이마를 짚을 때
나는 무방비였다
은빛 햇살에 눈을 찔린 채 나는
더듬더듬 빛의 감옥으로 걸어들어갔다
정원 말라비틀어진 구절초 위로
서리가 내려앉은 건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며 저녁을 생각하고
가을의 끝에서 겨울을 걱정하는 건
얼마나 나쁜 습관인가
마른 풀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죽어 겨울 틈으로 스며든다
해 질 녘
툭 터져 널브러진 붉은 노을 속에서
나는 차마 죽지 못하고
가을이 겨울에게 잊히던
어떤 순간을 떠올렸다
그렇게 하나쯤은 움켜쥐어도 좋지 않을까,
하얗게 지워질
그런 권리 같은 것
나무의 언어 (p.81)
나무는 혼자서는 말할 수 없어
웅웅대는 속엣말은 저밖에는 못 듣는데
그의 언어는 언제나 나무
바깥에 있기 때문이지
비바람 부는 날이면 겨우 말문이 터져서는
수십 수백 년 붙박이로 선 비밀스런 사연과
이해와 오해 사이의 침묵에 대해서
밤새 지껄이다가
서늘한 빗줄기에 성급히
뿌리까지 젖어 버리는 거지
모두들 바람의 허물을 얘기하지만
바람을 붙드는 건 언제나 나무였어
바람만이 유일한 그의 언어였으므로
제 팔이 꺾이고
부러지는 것도 모르고 나무는
외로워서
뼛속까지 외로워서
애썼다 (p.114)
애썼다,
핏대 올리며 미워하고
가슴 시리게 그리워하고
애끓게 원망하다가
끝내는 사랑하고 마느라
죽이지 않을 만큼만 미워하고
가슴 터지지 않을 만큼만 그리워하고
죽지 않을 만큼만 사랑하느라
애썼다
그 덕에 아침이 오고
계절 사이마다 비가 내리고
새가 울고
잎새마다 햇살이 타는 것이다
그 덕에
살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