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을 통과하는 여름이 있다 (강원문화재단 후원 발간 시집)

ISBN : 979-11-92134-47-5

저자 : 조성희

페이지 수 : 112p

발행일 : 2023. 8. 29.


책 소개 :

시집 <사라지는 것들을 통과하는 여름이 있다>에는 무언가를 잊거나 잃어버린 사람들이 나옵니다. 집을 잃어버린 사람,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 내가 있다는 걸 잊은 사람. 아이가 사라지기도 하고, 그가 눈 속에 파묻히기도 합니다. 단추를 잃어버리고, 풍선을 놓치고, 날개를 파닥이던 잠자리가 사라집니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의 눈동자는 내내 어둠 속을 바라봅니다. 상실의 아픔은 몸 곳곳에 빈 공간을 만들고, 어느새 일상처럼 곁에 머뭅니다. 너를 생각하며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돌아오지 않는 추억을 품은 이불을 덮고 잠이 들지요. 공원의 벤치가 여름을 견디듯이 그렇게 여름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저자는 가만히 손을 올려놓습니다. 묻어두었던 슬픔을 꺼내 보세요. 우는 어른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출판사 서평 : 

시집 <사라지는 것들을 통과하는 여름이 있다>는 잃어버린, 그리고 잊고 있는 것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부재不在, 현재 있지 않은 것. 우리 삶은 어쩌면 그 부재와 함께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채우려 노력해도 모든 것을 채울 수는 없겠지요. 원하든 원치 않든, 부재不在는 존재存在하고 있는 우리 삶.

조성희 시인은 그 자리에 마음을 얹습니다. 소란스럽지 않게 빈 곳을, 빈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당신의 빈자리는 무엇인가요? 그 빈자리에서 우리 함께 이야기 나누어요.


저자 소개 : 

조성희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이며

괜찮지 않은 밤을 지나고 있습니다.

잘 지내니? 안부를 물을 수 없어.

잘 있어, 라고 씁니다.

 

lydiabook@naver.com


책 속 내용 : 

그림자 (p.34)

 

공원이 있었다 벤치가 있었다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검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구름도감에는 150가지가 넘는 구름 이름이 있대

 

아스페리타스 카붐 무루스 플룩투스 카우다 볼루투스 콘트레일

 

낯선 구름 이름을 중얼거렸다

 

공원이 있었다 벤치가 있었다

 

벤치 밑에 검은 운동화가 있었다

 

소년이 공원을 지나고 있었다

 

 

 

봄, 밤 (p.50)

 

하얀 목련 봉오리 보며

이제 곧 봄이 올 거라고

 

달에게 바짝 기대 소곤거렸다

너만 알고 있으라는 듯

 

머뭇거리는 겨울을 향해

어깨 위로 빈손을 들어 흔들고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면

아직 계절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벚꽃잎 떨어지는 길은 꿈속, 봄

밤에 떨어지는 꽃잎은

지난겨울 내리지 못한 눈송이

 

봄은 밤이야

밤은 겨울에서 오는 거야

귀밑을 스치는 바람에

달은 숨죽이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웃었다

 

꼭 쥐고 있던 손을 펼치면

선명해져 있는 손톱자국

 

 

 

 

새소리 (p.108)

 

이사한 곳은 오래된 나무가 많은 곳이었다

사계절을 지나는 동안 매일 아침 새소리를 들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에게 자랑했다

계절마다 들리는 다른 종류의 새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고

 

중요한 건 다른 종류의 새소리를 구별하는 게 아니야

친구가 말했다

 

하나의 새 소리를 듣는 거

그 새가 언제 소리를 내는지 아는 거

우는 건지 노래하는 건지 아는 거

높낮이라든가 반복되는 리듬이라든가, 그날의

부리의 단단함을 보는 거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가까워지는

하나의 새소리를 듣는 거야